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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해가 저물고 초승달이 휘영청 떠오른 밤.

 

아이들은 자러 갈 시간이지만, 안 자는 아이들은 어디든 꼭 있었다. 오늘처럼 케일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 때라던가, 혹은 케일이 로운 왕국에 가서 안 돌아올 때라던가.

 

끼익-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온, 홍, 라온은 저택 내 유일하게 불이 켜진 케일의 방을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지금 케일의 방 주변에 누군가 있었다면 꼬리를 살랑거리는 고양이와 파닥거리는 검은 날개를 가진 귀여운 아이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케일은 푹신한 의자에 앉아 펜을 들고 있었다. 열심히 고민하는 표정을 보이기도 하고 아. 같은 짤막짤막한 말을 내뱉으며 펜을 움직이기도 했다.

 

“지금 시각은 10시 30분. 우리 인간이 며칠 전부터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다! 가끔 웃기도 하던데 뭔지 궁금하다!”

 

“궁금하면 들어가 보자, 막내야!”

 

“…나도 궁금하다는데.”

 

오랜만에 따로 자겠다고 방으로 갔는데 이렇게 돌아오면 케일이 뭐라 할까 싶어 셋 중 맏이인 온은 망설였다. 하지만 케일이랑 함께한 후로 케일이 화내는 건 본 적 없었다. 무엇보다 케일이 지금 뭐 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던 온은 동생들과 함께 들어가기로 했다. 지금 들어가도 케일은 반겨주겠지.

 

“인간아!”

 

꼬리를 살랑거리며 들어간 온과 홍보다 먼저 들어간 이가 있었다. 바로 어리지만 위대한 작은 용. 막내 라온이 날개를 파닥이며 들어왔다. 노크도 없이 들어온 목소리에 놀란 케일은 살짝 움찔했다.

 

“라온, 밤에는 목소리 조금만 낮추랬잖…. 허, 왜 안 자? 너희도 안자네?”

 

“인간이 뭐 하는지 궁금해서 왔다.”

 

“그러는 케일도 안자는데!”

 

“할 일이 있어서….”

 

“할 일?”

 

할 일이 맞긴 맞았다. 왕세자에게 편지 쓰는 일. 이것도 일이라면 일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쓰인 글은 일에 관련된 내용이 아니었다. 케일은 최한이 봤다면 이거 연애편지 아닙니까? 하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직 연애하는 건 아닌데.

 

“아무튼, 안 잘 거면 이리 와.”

 

케일의 말에 신이 나 어느새 다가온 온과 홍은 케일의 다리에 부비적댔다. 그르릉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라온은 케일의 옆자리에 살포시 앉았다. 그러면 그렇지. 아이들이 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 케일은 살짝 웃으며 적당한 양의 쿠키를 건넸다.

 

“먹는 건 자유지만 먹을 거면 양치는 꼭 하고.”

 

“알았다는데.”

 

조그마한 생물체 세 마리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인간은 애플파이 먹어라. 나 많이 갖고 있다!”

 

“그래.”

 

라온은 아공간에서 애플파이를 꺼내 케일에게 건네고는 옆의 온, 홍과 함께 쿠키를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근데 인간. 뭘 그렇게 쓰고 있나?”

 

케일은 깃펜을 들고 쓰던 것을 멈추고 라온을 마주 봤다. 밤하늘의 별들을 빼다 놓은 듯 반짝이는 라온의 눈동자를 보니 지금도 일하고 있을 그이가 떠오른 건 비밀로 해야지.

 

“편지. 알베르 저하께 보낼 거야.”

 

“편지? 영상통신구 있는데 굳이 편지로 보내는 이유가 있나!”

 

“그냥. 낭만적이잖아. 업무용이었으면 영상통신구 썼지.”

 

“그럼 무슨 내용이냐는데?”

 

“별자리.”

 

“별자리?”

 

“응. 너희 별자리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용생 6년. 별자리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누나랑 나는 예전에 들은 적 있다는데.”

 

“그럼 오늘은 자기 전에 별자리 이야기해 줄게. 이것만 쓰고 침대로 가자.”

 

편지 쓰던 것을 멈춘 케일은 다시 깃펜을 잡았다. 알베르 크로스만. 내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이야기를 들고 와보시지. 혹시 몰라요. 그에 맞는 선물을 줄지도?

 

 

* * *

 

 

그래. 따지고 보면 오늘부터였나. 말장난 같지 않은 말장난을 시작한 게.

 

로운으로 어서 오면 좋겠는데 또 어딜 들렀다 오는 건지 만날 수가 없어. 영상통신구는 왜! 안 쓰는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잖아.

 

5월이 지나고 어느덧 6월, 케일 헤니투스와 만난 지 약 3년이 지났다.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것은 나와 케일 헤니투스의 관계 정도? 그 외 바뀐 것은 통신구보다 편지지를 더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편지지만 아니었어도 얼굴 보고 얘기하는 건데 굳이 공자께서는 편지를 더 선호하네.

 

편지의 내용은

 

[ 저하. 별 보러 갈래요? 구름도 없고 밤하늘에 별도 잘 보이길래 저하가 떠올라 말씀드립니다. 싫으면 말고요. 아. 저하는 별자리에 대해 잘 아시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P.S. 답변은 편지로 부탁드립니다. 새로운 취미가 생겼거든요. 그럼 좋은 밤. - Kayle Henitus ]

 

“허. 편지가 취미야? 재밌는 취미를 가졌군.”

 

정갈하게 쓰인 케일의 편지를 받은 알베르 크로스만은 입꼬리를 올렸다. 편지지도 자기 닮은 것만 써서는. 나 케일 헤니투스요 하고 말을 하듯 검은색의 편지 봉투에 빨간색의 실링을 찍은 것부터가 너잖아. 방패 문양을 띄는 것을 보면 어느 누가 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지금 시각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이었다. 별이라…….

 

케일의 편지를 유심히 보던 알베르는 시종을 불렀다. 그러고는 하얀색 바탕에 청색으로 문양을 새긴 편지지와 케일과 똑같은 종류의 편지 봉투를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이걸 받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케일?”

 

[ 좋은 밤 보냈나, 케일? 자네가 보낸 편지 덕분에 잘 잔 것 같아. 그대도 잘 잤으면 좋겠어. 별자리라면 조금은 알고 있긴 하다만... 케일 너를 닮은 별자리를 알고 있지. 별을 보고 나를 떠올려주다니 내심 기뻐. 나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 건가? P.S. 통신구 걸면 안 받아주나? 얼굴 보고 싶어. - Albert Crossman ]

 

“부디 잘 갔으면 좋겠군.”

 

편지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알베르의 실링은 금색이었다. 짱돌 저택으로 편지가 도착하기까지 많은 손을 타지 않도록 하려는 심보였다. 그러니까, 알베르는 편지를 받기까지 3~4일 걸리는 기간을 이틀로 줄였다. 최대한 케일에게 빨리 닿기 위함이라는 그 이유 하나로 편지에 왕족이라는 뜻을 남겼다.

 

“도련님, 편지가 왔습니다.”

 

“가져와. 아, 오면서 론에게 차가운 음료 한 잔 가져오라고 하고.”

 

무슨 내용을 썼을지 기대하던 케일은 편지 봉투에 찍힌 실링을 유심히 보았다. 케일은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편지 봉투는 어디서 공수해 온 거야. 똑같잖아. 조심스레 실링을 제거한 케일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편지를 펼쳤다.

 

쿵.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이 편지는 심장에 해로웠다. 뭐야 알베르 크로스만? 돌겠네 돌겠네 하더니 진짜 돌았나 봐! 허.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편지의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추신에 달린 알베르의 마지막 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보고 싶데. 나를. 알베르가 나를 보고 싶데. 곧 왕이 될 자가 이런 내용을 써서 보내도 되는 건지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날려 버린 지 오래였다. 이번에 로운 가면 확 말해버릴까?

 

“미쳤나 봐, 진짜.”

 

입에서 나온 말과는 다르게 케일은 즐거워 보였다. 론이 갖다준 얼음을 동동 띄운 레모네이드를 찡그린 표정 없이 쭉 들이킬 정도로 케일은 즐거웠다.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케일은 깃펜을 다시 한번 잡았다. 사각사각 써 내려간 케일은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 저하, 제가 많이 보고 싶은가 봅니다. 그런 말도 써놓으시고, 의외네요. 평소에도 자주 보시는 분이 왜 제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시는지 이유를 알아야겠습니다. 별 보러 가는 건 조금만 기다리세요. 2주 후 보름달이 뜨는 날 당신 앞에 나타나겠습니다. 저를 닮은 별자리가 뭔지 무척 궁금합니다. 가면 꼭 알려주세요. P.S. 통신구 쓰시면 안 받을 겁니다. - Kayle Henitus ]

 

“이번엔 라온에게 부탁해볼까.”

 

텔레포트를 쓸 줄 아는 용이 있다는 것을 떠올린 케일은 방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저 아래 보이는 라온은 온, 홍과 분수대에서 놀고 있었다. 서로 물 튀기며 노는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케일은 라온을 불렀다.

 

“라온.”

 

소드마스터 이상의 청력을 가진 라온은 작은 말소리여도 케일의 목소리라면 언제나 귀를 기울였다. 라온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케일이 있는 곳으로 눈 깜빡한 사이 올라왔다.

 

“왜 불렀나, 인간!”

 

“저하 침실 좌표 알지?”

 

“왕세자 침실 말이냐? 저번에 가봤으니 기억하고 있다. 나는 위대한 라온 미르니까!”

 

“이 편지, 보지 말고 저하 몰래 침대 옆 서랍에 두고 와.”

 

“특별 임무 같은 건가?”

 

“그런 셈이지?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고 잘 다녀오면 용돈 줄게.”

 

“다녀오겠다. 인간!”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 라온이 있던 자리를 보다가 등을 돌린 케일은 열린 창문으로 다가가 하늘을 바라봤다. 6월의 하늘은 하늘색의 도화지에 흰색의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듯 군데군데에 구름이 퍼져 있었다.

 

“예쁘네. 덥기도 하고…. 애들 데리고 바다 보러 갈까.”

 

이따 오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케일은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인간아!”

 

결과만 보자면 라온은 알베르에게 들켰다. 이 시간에 침실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라고 말하며 나타난 라온은 알베르가 직접 챙겨줬는지 쿠키가 가득 담긴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심지어 알베르가 기대하고 있겠다고 전해달라는 말까지 들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2주 동안 준비해야겠네.”

 

“준비?”

 

“어디 가냐는 건데 케일?”

 

“어. 로운 왕국 갈 거야. 물론 그전에….”

 

“그전에?”

 

일렬로 주르르 앉아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케일은 피식 웃었다.

 

“놀러 갈 거야. 바다로.”

 

* * *

 

밤에는 태양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무수히 많은 별이 서서히 반짝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빛을 내기 시작하는 별들을 모아 놓은 것을 우리는 별자리라고 한다지. 알베르는 집무실의 커튼을 걷혔다. 창문으로 보이는 달은 마침 보름달이었다.

 

오늘인가. 2주 전의 약속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슬쩍 올린 알베르는 5개의 편지가 놓여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2개는 알베르와 주고받은 것이요, 3개는 2주 동안 케일이 보낸 편지였다. 놀러 가니까 편지 보내면 못 읽는다고 당돌하게 써놓은 게 참 케일다웠다. 불경한 놈.

 

“언제까지 기다리게 하려고. 보고 싶다고 써도 보러 오질 않으면서 편지에서도 내 얘긴 하나도 없ㅇ...”

 

알베르의 말이 끝을 맺지 못했다.

 

“제가 언제 안 했대요?”

 

눈앞에 케일이 짠. 하고 나타났다.

 

“너, 너…!”

 

“제가 왜요? 오늘 올 거라고 써놨잖습니까.”

 

“정말 돌겠군.”

 

“오늘은 돌면 안 돼요. 저랑 별 보러 가야죠, 저하.”

 

“너도 참 너야. 오자마자 불경한 놈. 못 하는 말이 없어요.”

 

“저 지금 저하가 얘기해 주신다는 거 기대하고 왔는데요. 실망하게 할 겁니까?”

 

안 그럴 거란 걸 알면서도 일부러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하는 케일을 향해 알베르는 손을 뻗었다.

 

“어휴…. 같이 간다며. 자. 데려가.”

 

“좋아요. 그럼 갑니다. 잘 잡아요.”

 

알베르는 케일을 따라 집무실을 나섰다. 바깥은 조금만 둘러봐도 어두운 밤하늘 곁에 무수히 많은 별이 떠 있었다. 이 중에서 유난히 빛나는 별들을 모은다면 여름을 대표하는 별자리 또한 금방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케일, 여기는 왕궁 위 아닌가?”

 

“앉을 곳도 있고 탁 트여 있어서 별 보기에 딱 좋지 않아요?”

 

“좋군.”

 

케일이 어떤 별자리를 바라고 알베르에게 편지를 썼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알베르는 3년 전 케일을 처음 봤을 때부터 기억 속에 방패자리라는 별자리가 새겨지듯 떠올랐다. 이미 각인 되어 다른 별자리는 떠오르지 않았다.

 

“저하가 저를 보면 떠오르는 별자리가 있다고 하길래, 대체 뭐죠?”

 

알베르는 귀 끝을 살짝 붉힌 채 말을 이었다.

 

“방패자리라고 여름철 별자리 중 하나라네. 잘 알려지진 않았네만 3년 전 너를 봤을 때부터 기억하고 있었어. 더군다나 로운 전쟁에서 은빛 방패로 이긴 공자는 케일 자네 아닌가. 자네가 이 별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누가 어울리겠어.”

 

케일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은빛 방패 공자.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케일이 지나간 자리마다 모두가 그렇게 불렀었지. 물론 케일은 부담스러워했지만, 알베르는 지금 생각해도 케일을 보면 방패가 떠올랐다. 그게 너인걸.

 

“그래서 난 아무래도 너를 좋..”

 

“알베르, 좋아합니다.”

 

“어?”

 

“선수 뺏고 싶지 않았는데 얼굴 붉히며 말하는 알베르가 너무 귀여워서 그만. 그리고 저 좋아하는 건 편지에서도 이미 드러내셨잖아요. 어느 누가 보고 싶다고 그렇게 적어요. 라온이한테 부탁해서 날아갈 뻔했네.”

 

“그만, 그만. 귀엽다는 말 꺼내지 말고 잠시만 조용히 해봐….”

 

알베르의 심장이 쿵쿵거렸다. 나른한 목소리로 저런 말을 하는 케일이 좋았기 때문에. 머릿속이 케일의 고백으로 가득 찼다. 짧지만 귀에 확 들어오는 문장을 묘하게 떨린 목소리로 말하던 케일이 좋아서 두근거렸다.

 

“죄송하지만 조용히 못 하겠는데요.”

 

“뭐?”

 

“멋진 이야기를 들려준 선물을 드려야 해서요.”

 

케일의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이야기를 갖고 온 알베르 크로스만에게 맞는 선물.

 

선물? 하고 의문을 띄운 순간 알베르의 입가에 보드라운 무언가가 가볍게 붙었다 떨어졌다.

 

쪽.

 

그리곤 귓가에 케일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

 

“좋아해요. 알베르 크로스만. 저와 일상을 함께 해보지 않을래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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