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베르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고 앞 소파에서 자는 케일을 바라본다. 불경한 놈.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봤다. 돌아가서 편히 잘 것이지. 인상을 쓰며 아까 케일과 대화했던 내용을 생각한다. 돌아가서 자라고 하니 오히려 저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특유의 덤덤한 목소리로 '저하, 저는 단지 제 것을 보러왔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 말에 알베르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케일은 더 관심을 주지 않고 저 소파로 가서 한참을 집요하게 저를 바라보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피곤할 만도 하겠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 대륙 이곳저곳을 들쑤시다가 쳐들어왔으니 말이다. 아직은 뭘 꾸미는지 알베르에게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일이니 절대 로운에게, 자신에게는 해를 끼칠 리가 없었었다. 오히려 이익을 주는 일이겠지. 알고는 있지만, 알베르는 조금 씁쓸히 웃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의 곁에는 우수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연인으로서는 씁쓸했다. 자신보다도 그의 곁에 있는 그들이 더 케일의 일에 대해서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더는 일에 손이 잡히지 않았다. 알베르는 길게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천천히 케일의 곁으로 가 그의 옆에 앉았다. 불편하지도 않은지 앉은 자세로 잘도 잔다.
알베르는 조심스럽게 케일의 뺨에 손을 올렸다. 며칠 전의 만났을 때보다도 말라 보이는군. 그들이면 분명 잘 먹였을 텐데.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뼈밖에 없군. 케일을 바라보던 알베르의 고운 미간에는 주름이 생겼다. 일어나면 뭐라도 먹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었다. 붉고 붉은 머리카락이 알베르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갔다. 이런 연약한 몸이 전장에만 가면 그 누구보다도 의지가 된다고 하면 그를 모르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겠지. 아니 이제 그런 인물이 이 세상에 있을까 싶지만. 알베르는 천천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전장에서의 그의 모습을.
전장에서의 케일의 눈동자는 평소와 같았지만 달랐다. 그의 눈과 기백으로 차분해졌다. 약자와 같았던 인물이 전장에서는 강자였다. 그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을 정도의 강자. 그가 있다면 어느 전장도 무섭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피를 토해내면서도 케일은 언제나 침착했다. 자신이 쓰러지면 안 된다는 듯이. 자신은 아직 괜찮다는 듯이. 입가에 피를 단체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 낯으로 해볼 만하다고 할 때에는 알베르는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쯧. 생각하다 보니 짜증이 난 알베르가 다시 눈을 뜨고 케일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그랬지. 케일은 꼭 동물의 왕 사자와 같다고. 그래. 고고하고 여유롭게 웃는 꼴이 꼭 사자 같지. 하지만 이놈에게 왕은 못 해. 한곳에 있을 녀석도 아닐뿐더러 쉬어야 한다. 백수 한다고 했으면서도 늘 사고를 치고 일을 벌이고 와서 문제지만. 이놈이 왕까지 되면 분명 과로사할 것이다. 케일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그의 머리칼을 쓸던 알베르는 천천히 입을 내려 맞췄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자신 연인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 뭐 하십니까. "
" 내가 내 거에게 입을 맞출 뿐이네. "
잠에서 깬 케일이 헛것이라도 본 것마냥 저를 바라보았지만, 알베르는 덤덤하게 아까 케일이 했던 말처럼 답했다. 그 말에 불경한 눈으로 허. 탄식을 내뱉더니 알베르의 손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이끌고 오더니, 약지에 짧게 입을 맞추며 웃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이뻐 보였다.
" 저하 일은 끝내셨습니까? "
" 지금은 잠시 쉬는 중이라네. '
케일이 씨익. 웃더니 소파에 기대었던 등을 떼고 상체를 알베르 쪽으로 숙이더니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웃었다. 알베르는 불경하다고 말하면서 케일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웃었다.
" 그럼 알베르 저랑 쉬어요. "
" 케일 너 이러려고 여기 왔지. "
알베르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케일은 웃었다. 답을 하지 않았지만, 알베르는 알아들었다. 그와 닮은 저였으니까. 알고 넘어갔으니까.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짧게 서로의 입을 맞췄다가 떨어진다.
" 근데 웬일로 혼자 왔어? "
"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요즘 당신을 제대로 못 본 거 같아서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여기까지만 데려다주고 돌아가라고 했어요. 아. 갈 때 과자 좀 챙겨주세요. 애들이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
덤덤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요구하는 케일을 이 녀석 뭐지. 하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알겠다고 대답한다. 그래. 그거라도 들려 돌려보내지 않으면 분명 둘이 있을 기회는 더욱 적어질지도 모른다. 케일은 덤덤하게 말하지만, 알베르는 알고 있다. 정말로 그와 둘만 있는 자리는 무척이나 힘들다는 것을. 늘 그의 곁에는 그의 사람들이 꼭 1명 이상이 붙어 있으니까. 이런 기회는 정말로 드물었다. 복잡한 심경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 언제 갈 거야? "
" 제가 갔으면 하나 봅니다? "
알베르의 말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한껏 불경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럴 때는 본인 나이 같아 보이는데 말이야. 가만히 케일을 바라보던 알베르가 피식 웃으며 케일의 눈가를 손으로 쓸었다.
" 과자 챙겨 달라며 미리 알아야 하니까 묻는 거고, 누가 너 갔으면 한다고 했나. "
" 오늘 안 가요. 내일 간다고 했으니까 재워 줘요. "
씨익.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케일이 알베르의 손에 고갤 기대었다. 미친. 다행히 내뱉지 않았지만, 입가에 맴돌았다. 저놈이 하는 말 중 정상적인 게 없지만, 오늘보다 더 정상적이지 않은 건 또 처음이다. 날 시험하는 걸까 싶었다. 알베르가 인상을 찌푸리자 케일은 뭐가 좋은지 키득키득 웃으며 알베르의 손바닥에 입을 맞춘다.
" 또 한동안 동대륙 가야 해서요. 당신 얼굴이나 실컷 봐야 해서요. 있다가 이 얼굴 말고도 보여줘요. 난 그게 더 좋아. "
" 너.. 점점 더 불경해진다? "
" 그래서 싫어요? 좋으면서. "
" 불경한 놈. "
케일은 그의 말을 그러려니 넘기며 신경 쓰지 않았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알베르는 전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으니까. 그러니 분명 밤에는 케일이 바라는 데로 원래의 모습으로 그의 앞에 있을 것이라고 알베르는 알고 있다. 그래도 말이라도 하지 않으며 부끄러워지니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케일도 알고 있지만 이번은 모르는 척 넘겼다. 그의 붉어진 얼굴은 저녁에 충분히 볼 것이니까. 지금은 봐줘야겠다. 그리 다짐하고 케일은 조용히 알베르의 이름을 불렀다. 말없이 뭐냐고 묻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맞췄다.
" 사랑한다고요. "
" 자네는 진짜.. "
" 알베르 사랑해요. "
" 돌겠네. 진짜. "
갑작스러운 케일의 사랑 고백에 알베르의 귀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케일이 웃으며 알베르의 귀를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웃었다. 넘어가려 했는데 귀엽단 말이지. 케일이 속으로만 생각하며 알베르를 바라봤다.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저게 진심이기에 뭐라 하기에도 힘들었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다가 케일의 목덜미를 당겨와 입술에 여러 번 입을 맞추며 그처럼 그의 귀를 만지작만지작 이며 귓가의 속사였다.
" 케일 사랑하고 있어. "
이 인간. 이번에는 반대로 케일의 귀가 뜨거워졌다. 낮은 알베르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케일에게만 통하는 방법이었다. 알베르가 여유롭게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인상을 찌푸리며 알베르를 바라보던 케일이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기대어 앉았다. 승자도 없는 승부였다.
" 케일. 백성들이 그러더군. 자네는 사자와 닮았다고. "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일까 싶었다. 방패 공자도 영웅도 다 귀찮고 싫은데 뚱딴지같이 사자야. 케일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어지는 알베를의 말을 대충 흘려듣다가 케일이 입을 열었다.
" 당신이 해요. 사자. 난 안 해. 난 백수 할 거라니까. "
뜬금없이 무슨 일인가 싶지만, 알베르는 케일의 말을 알아들었다. 피식 웃으며 저에게 케일의 머리카락을 만졌다가 짧게 입을 맞추며 웃는다. 그래, 넌 백수 해야지. 그런데 알고 있겠지. 케일. 이제 난 널 놓아주지는 않을 거야.
" 그래. 내가 무슨 수를 써서도 백수 시켜줄게. 단, 내 곁에서 말이지. "
" 당신 곁에 있으면 백수 되기 힘들 거 같은데요. "
" 내 거니까 포기해. "
허. 참. 케일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근데 저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여기 있으면 일을 할 거 같단 말이지. 하지만 이 인간도 내 건데 말이지. 놓아줄 생각도 없고. 근데 뜬금없이 웬 사자. 요즘은 좀 잠잠하다 싶었는데. 속으로 한숨을 쉬던 케일이 몸을 돌려 알베르를 바라봤다.
" 좋아요. 당신도 내 거니까. 어디 갈 생각 하지도 말아요. 안 놔줄 거니까. "
" 누가 할 소리인데. "
케일과 알베르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