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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신들이 강가에서 연회를 열었을 때, 갑자기 괴물 듀폰이 나타나 놀란 신들은 동물로 변신하여 도망쳤는데 그 중 여신 아프로디테는 물고기로 분하여 도망하였다고 전해진다.

 

 

 

*

 

“최근에 교역선 하나가 또 난파되었다지?”

 

“그렇다니까. 남쪽 바닷가 마을의 어민들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그러더군.”

 

“왜 갑자기 그렇게 사고가 늘었나 몰라.”

 

“이건 비밀인데. 요즘 소문이 하나 돌고 있던데.”

 

“무슨 소문?”

장터의 가판대 뒤에서 상인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수다를 떨고 있던 상인들이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별안간 목소리를 줄였다.

 

“바다가 갑자기 사나워진 게 세이렌 탓이라는 소문일세.”

 

“세이렌은 이미 사라지지 않았나?”

 

“그런데 살아 돌아온 사람이 말하길 바다에 빠져 정신을 잃기 전, 커다란 물고기의 꼬리를 봤다는 거야!”

 

“에이, 그거 가지고 그게 세이렌인지 어떻게 아나?”

 

“아니 기이한 일이 어디 그것뿐인가? 어떤 뱃사람은 바위 위에 사람 같은 것이 있어 다가가다 그것에 홀려 암초에 부딪히기도 했다네!”

 

최근 사람들 사이에 퍼진 소문에 대해 떠들던 두 사람이 티격태격 대화를 이어갔다. 에이, 그래도 세이렌이 아직까지 존재할 리가 없지! 뭐, 나라님이 조사단을 보내셨다니 어떻게든 해결이 되지 않겠는가! 그것도 그렇군. 하하하. 아, 그런데 시집간다던 자네 딸은 어떻게 되었는감?

 

 

*

 

 

“잠행을 다녀오지.”

 

왕. 알베르 크로스만이 잠행을 나가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민심을 가까이에서 살피기 위해 평범하게 꾸미고 거리에 나가는 것은 상당히 좋은 방법이었으니. 왕의 말에 하녀들은 말없이 언제나 그가 잠행을 나갈 때 입는 옷을 가져다주었다. 그래. 잠시 둘러만 보고 오자. 알베르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시끄러운 속을 달래며 로브를 뒤집어쓰고 자신의 궁을 나섰다.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알베르 크로스만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말을 몰고 있었기 때문에. 귓가에 닿아오는 거센 바람을 느끼며 그는 아직도 갈등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째서 저잣거리로 향하던 말머리를 틀어 항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오랫동안 이유미상의 연쇄적인 난파 사건으로 머리가 어지럽긴 했다. 바다야 본디 변덕이 심하다지만 난파의 이유가 세이렌이라니. 아무리 신이 존재하는 땅이라지만 – 그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신이라는 존재는 가끔씩 신탁의 힘을 빌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길 좋아하는 법 이었다 – 정말 신뢰 할 수 없는 소문이었다. 생각이야 어쨌든 그는 최근 저잣거리에 만연한 소문 하나 때문에 항구로 향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사태 파악을 위해 보낸 조사단이 실종되었다는 타당한 명분이 있었지만. 아무튼, 이런 식으로 충동적인 결정을 내린 적은 그의 생에서 기필코 한 번도 없었다. 정말로! 그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오늘도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알베르는 정말이지 충동적으로 목적지를 바꾸어 항구로 향하고 있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글쎼, 바다가 부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받았기 때문일까.

 

그가 항구에 도착한 것은 점심시간을 막 넘겼을 때였다. 결국 알베르 크로스만은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호기심, 아니 그 이상의 감정에 몸을 맡겨 보기로 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는 모든 게 쉬웠다. 항구에 있는 마구간에 말을 넣어놓고 곧바로 선착장으로 향한 그는 배 한 척을 빌렸다.

 

“이러려고 배운 항해술이 아닐 텐데.”

 

평민의 옷을 입고 능숙하게 밧줄을 묶으며 조그만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그의 모습은 딱 젊은 뱃사람 같았다. 해군을 이끌기 위해 익혔던 항법을 이런데 쓰는구나. 알베르가 피식 웃음을 삼켰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그는 바다가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 알았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하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일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을 이곳으로 오도록 이끈 필연적인 무언가가 저를 지켜줄 거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었다. 이것을 놓치면 필히 후회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그의 이 터무니없는 일탈에 박차를 가했다. 그의 촉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므로.

 

알베르는 몇 번이고 보아 이제는 외워버린 지도를 되뇌이며 조심스럽게 키를 잡았다. 다행히 바다는 잔잔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얼마쯤 지났을까. 인내의 시간을 보상받듯 알베르의 시야에 반쯤 안개에 가려진 자그마한 섬이 들어왔다.

 

수평선 너머 바다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작은 바다섬이 있었다. 세이렌이 산다고 불리는 그곳을 바라보던 알베르의 고운 금발이 시원한 미풍에 날려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탓일까.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안개에 가려진 검은 바위섬의 신형뿐이었다.

 

“이래서는 저곳에 정말로 생명체가 사는지조차도 알 수 없겠군.”

 

위험을 무릅쓰고 섬에 조금 더 다가가 보려고 할 때였다. 방금까지 평화롭고 고요했던 것이 거짓말인 듯 파도가 점점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내리기 시작한 비는 맹수로 돌변한 바다를 더욱 부추겼다. 높은 파도가 마치 그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 요동칠 때 알베르 크로스만은 그제야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이제는 남은 건 그저 자신의 운이 얼마나 좋을지 기대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파도에 휩쓸려 검은빛의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살기 위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놓으려 할 때마다 시린 바닷물이 코와 입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를 저 검은 바다의 밑바닥으로 저를 밀어 넣으려는 파도에 힘껏 저항했다.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그는 그의 어깨에 위에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자리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지금의 ‘왕’이 사라지면 그가 세워 놓은 왕국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그래서 그는 살아야만 했다. 그건 알베르 크로스만의 사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무거운 몸뚱아리는 서서히 가라앉아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난폭한 해수면과 달리 깊은 바닷속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감기는 시야 사이로 언 듯 붉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본 것도 같았다.

 

 

*

 

 

철썩

 

바로 옆에서 치는 듯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알베르는 순간 그가 바다 밑바닥에서 정신을 차린 건 아닐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현실성 없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것에 아니라면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바닷새의 울음소리, 볼에 와 닿는 차가운 물방울의 촉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오랫동안 기절한 여파인지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을 때 그는 이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게 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깨어났네?”

 

귓가에 전달되는 목소리에 저절로 몸이 떨렸다. 공포. 그것은 미지에서 온 공포였다. 분명 귀를 타고 흘러들어온 목소리는 아름다운 미성의 그것이었는데 어째서 몸이 떨리도록 공포심이 드는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그곳에서, 그는 신을 보았다.

 

“너…. 내가 무섭구나?”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기울이는 ‘그것’을 알베르는 말을 잃은 채 멀거니 바라보았다. 정제되지 않은 아름다움이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 몽롱해 보이면서도 본질을 꿰뚫을 것만 같은 갈색 눈, 조각같이 수려한 눈코입이 자아내는 나른한 표정이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실제로 사람의 다리가 존재해야 할 자리에 물고기의 꼬리를 달고 있는 것이 참 이질적이긴 했으나 그것을 뛰어넘는 어떤 분위기가 그것에게 존재했다. 닿을 수 없는 초월자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애롭고 친숙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서 알베르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너는 누구지?”

 

“글쎄?”

 

나른하게 웃는 그 표정이 얄미우면서도 매혹적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를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이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알베르는 느낄 수 있었다. 이자는 그저 뱃사람들을 홀려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고대의 마물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누구지. 신?”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리고 신이라고 생각했다는 사람치고 네 말투 굉장히 불경한데.”

 

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긴 호선을 그렸다. 성인(聖人)이 짓는 미소가 이런 것일지 착각하게 할 만큼 자애로운 표정을 띠고 있었으나 인어의 눈만은 그와 대비되도록 죽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언뜻 알베르는 그 눈에 스쳤던 날카로운 호기심을 본 것만도 같았다.

 

“딱히 떠받들어 준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아니지 않나?”

 

“그렇지.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야. 신들보다야 금방 사라질 그깟 감정에 얽매이는 건 인간이 아닌가? 너도 다를 바 없지. 안 그래, 인간들의 왕?”

 

알베르 크로스만의 푸른 눈이 저무는 태양 아래서 빛을 발했다. 왜일까. 그는 갑자기 울컥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들에 울렁거림을 느껴야 했다. 알베르 크로스만은 신을 믿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그는 본디 크로스만 왕가의 사생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는 절대 왕위에 오를 수 없을 것이라 멋대로 지껄였다. 하지만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의 핏줄대로 살아가기에 알베르는 너무나도 총명했고 또, 강했다. 차라리 멍청했다면, 왕위를 거머쥘 생각도 못 하는 순진한 아이였다면 그는 좀 더 조용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까? 글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 인거다. 아무튼 알베르 크로스만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왕관을 차지한 것은 그저 살고 싶어서였다. 그는 언젠가 사그라질 멍청한 사생아나 누군가의 장기 말로 이용되다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적부터 차근차근 발판을 마련해 왔다. 그 스스로의 힘으로 주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가장 낮은 자리의 별이 태양이 될 것이다.

 

어느 날 신전에 신탁이 내려왔다. 가장 낮은 자리의 별을 의미하는 건 그밖에 없었다. 평민의 피가 섞인 천한 왕자 알베르 크로스만!

 

신이 하는 말의 파급력은 컸다. 그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계획들이 빛을 볼 새도 없었다. 화려하게 알을 깨고 나와 날아오를 준비를 하던 작은 새는 단장을 채 마치지도 못한 채 알에서 끄집어내어 하늘로 던져졌다. 비록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나 알베르 크로스만은 분노를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선택받고 싶지 않았다. 당당히 장애물을 넘고 가로막는 것들을 베어 넘겨 쟁취하고 싶었다. 그 스스로 하지 않으면 좋은 핏줄로 태어났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호의호식하는 인간들과 다를 바가 무어란 말인가? 물론 명석한 알베르 크로스만은 기회를 놓치는 자가 아니었으므로 유리하게 내려온 신탁을 잘 써먹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분은 더러웠다. 정작 고통받을 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으면서 제 손으로 모든 걸 이루어 내고 나서야 적선하듯 던져준 그 한 마디는 위선이었다. 어쩌면 경고일지도 몰랐다. 네 손으로 운명을 바꾸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너는 아직도 손바닥 위에 올려진 한낱 물고기나 다름없다는 그런 경고.

 

그래서 알베르 크로스만은 신을 믿지 않았다. 위선적이며 독선적인 절대자. 그는 이미 한차례 신에게 긍지를 빼앗긴 적이 있었다. 그래서 눈앞의 미지의 존재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지도 몰랐다.

 

알베르는 눈앞의 인어가 정말로 위대한 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한낱 인간에 비해 절대적이고 신비한 힘을 지녔다는 것은 확신 할 수 있었다. 인외. 머리카락이 쭈뼛 서도록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그리고 그런 힘을 가졌으면서 왕국의 배를 이유 없이 난파시켰다. 드물게 아니, 거의 이례적으로 흥분한 알베르에게 진위를 가릴 여유 따윈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여과 없는 분노가 드러났다.

 

“그럼 당신은 어째서 애꿎은 배들을 바다 밑으로 가라앉히는 건가?”

 

“나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는데?.”

 

붉은 머리 인어가 어깨를 으쓱대었다.

 

“그렇다면 최근에 이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고들은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지?”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니까. 내가 한 건 이 주변 암초들 때문에 난파된 배에서 선원들을 꺼내준 것밖에 없지.”

 

“...”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이 났을까? 왕자님. 네 생각보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인간들은 많단다. 이곳에 온 이들 중에 상당수는 나를 붙잡아 경매장 따위에 내새우려는 작자들이었지.”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콰과광. 갑자기 얼굴을 불쑥 들이민 그에 알베르는 답지 않게 흠칫 몸을 떨었다. 웃음을 지운 인어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알베르 크로스만이 자신은 왕자가 아니라고 지적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 지금쯤이면 바닷속에서 티파티라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지.

 

“뭐 그것도 딱히 내가 한 건 아니야. 나는 그저 바다에게 조금 사랑을 받는 물고기일 뿐이니까.”

 

인어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표정으로 가볍게 허공에 손짓했다. 그 간단한 손길에 바닷물이 허공으로 몽글몽글 떠올랐다. 가볍게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가 나고 물을 잔뜩 뒤집어쓴 후에야 알베르는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머리카락을 잔뜩 적신 차가운 바닷물이 그의 정신을 깨워주었다. 문득 고개를 들고 올려다본 하늘은 어느새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와 이 기묘한 인어가 앉아있는 곳은 섬이라기보단 자그마한 암초에 가까웠다. 알베르 크로스만은 푸욱 한숨을 내쉬며 과열되었던 감정을 빠르게 식히고는 현실적인 고민에 나섰다. 단지 한 순간의 충동과 치기로 밤새 바다 한 가운데에 갇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물 밖에 오래 있었더니 지느러미가 말랐잖아.”

 

속이 타는 알베르와 대조되게 그는 태연하게 바위 위에 앉은 채 꼬리를 퍼덕거렸다.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시꺼먼 공포와 압박감도 조금은 희석된 것이 느껴졌다. 그에게서 눈을 돌리지 못하던 알베르는 새삼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각할 수 있었다. 저무는 석양은 인어의 비늘에 다채로운 색채를 더했다. 분명 밝았을 때 언뜻 보았던 그의 꼬리 색은 투명하고 푸르른 바다의 색으로 영롱히 빛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빛을 받은 비늘들이 붉게 타오르는 듯 보였다. 확실히 그는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모아 만든 것처럼 보일 정도로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언제 초조한 모습을 보였냐는 듯 금세 또 자신의 얼굴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에 인어가 속으로 키들키들 웃는 것도 모를 정도로 알베르 크로스만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 하려는데, 어때?”

 

“ 무슨...?”

 

아, 홀렸다는 게 이런 건가. 귓가에 흘러들어오는 미성에 그가 정신을 차렸다. 아니, 아직 제정신은 아니었던 건지 무언가를 물어오는 인어에 고개를 끄덕인 것도 같았다. 그때 휙 언제 붙들리었는지도 모를 손이 끌어당겨 지며 물속으로 고개가 처박혔다. 아까 물어봤던 게 이런 거였나! 평소와 달리 얼빠져있었던 자신을 자책하며 알베르는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았다. 인어에게 손이 잡힌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알베르는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으로 저 녀석을 죽이려는 심산인지 인간이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먹은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느 동화처럼, 왕자님의 손을 잡고 바다를 헤엄치던 인어는 그제야 인간이 숨을 쉬는 데에는 산소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우뚝 멈추었다. 내가 구해놓고서 잊어버리다니! 그가 포르르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재미있는 인간을 죽게 놓아둘 순 없지. 푸른 바다의 한가운데서 바다의 사랑을 받는 작은 물고기가 저를 욕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바다만큼 푸르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반듯한 이마에 키스를 남겼다.

 

“큭, 허억!”

 

갑자기 쉬어지는 숨에 알베르가 급하게 산소를 갈급했다. 멍한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난제를 떠올렸다. 나는 무슨 이유로 살려고 버둥거리지 않았지? 바닷속에서 침잠하며 이대로 사라져도 좋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째서인가? 알베르 크로스만이 왕이 된 건 반 정도는 자의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자리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군주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왕, 가장 높은 곳에 올라앉은 지도자의 일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지탱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몰랐으므로. 자신의 어깨 위는 절대로 가벼워질 수 없었다. 그의 부재가 무엇을 초래할지 알베르 크로스만은 모르지 않았다.

 

눈앞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인어가 보였다. 신과 같은 완벽하고 초월적인 존재가 주는 거북함이 잔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이 앞에서는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안.”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을 물속으로 데려오는 건 오랜만이라….”

 

묘하게 당황한 모습에 알베르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인어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의든 그렇지 않든 인간에게 해코지를 할 뻔 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는 절대적인 존재들 사이에서도 유별나게 평화를 추구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인간을 굳이 괴롭힐 이유가 있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많은 절대자는 인간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게 아니면 단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을 불행에 밀어 넣는 저질들이거나. 그의 취미는 매우 건전한 편이었다. 가끔 재미로 재능있는 인간 몇 후원하고 죽어가는 가냘픈 목숨 건져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지루해져 갔다. 인간들은 너무 멍청했다.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소원 하나를 들어주었더니 자신에게 어째서 관심을 주지 않느냐며 되려 화를 내는 것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멍청이들은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고.

 

그런데 눈앞에 이 녀석에게는 조금 마음이 동했다. 기민하게 상황파악을 하고 경계하는 모습이 나름 귀여웠고 다른 인간들처럼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굴면서도 – 왕국 하나를 가지긴 했다 – 상처가 많은 소동물처럼 빌빌거리는 것이 흥미로웠다. 뭣보다 오랜만에 그의 심미 의식을 자극하는 얼굴을 하고 있기도 했다.

 

“사실, 하루 정도 데리고 놀고 보내주려고 했는데... 이참에 너 나랑 계약할래?”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나를 즐겁게 해주면, 네 소원을 하나 들어줄게.”

 

“소원이 있을 것 같나?”

 

애써 당황을 감추며 알베르 크로스만이 대답했다.

 

“원하는 거, 있잖아?”

 

자신의 턱을 유혹적으로 들어 올리는 인어의 도발에 알베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심장이 쿵쿵 시끄럽게 뛰어 대었다.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마음 어디에서나 만족감이 차올랐다.

 

“그게 뭔지 알아?”

 

난, 모르겠는데. 뒷말을 삼켜낸 알베르가 물속에서도 선명히 빛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당연하지.”

 

인어는 싱그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케일, 기억해 둬.”

 

“뭐?”

 

“나의 진명이 이 계약에 보증이 되어줄 거야.”

 

 

 

*

 

 

 

“지난번 잠행에서 돌아오시면서 폐하께서 웬 물고기를 주워 오셨다면서?”

 

“그래! 갑자기 커다란 수조를 준비하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지 뭐야?”

 

 

왕, 알베르 크로스만의 집무실 문이 닫히며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어떤 방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수조에 나른한 표정으로 몸을 뉘인 아름다운 인어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어서 와. 나의, 알베르 크로스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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