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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록수는 다음날 동아리 문 앞에 서 있었다. 궁금한 것은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덕분에 눈 아래 퀭하게 생긴 다크서클이 비실거리는 낯을 한층 증폭시켰다.

똑똑. 중지를 조금 튀어나오게 쥐어 문을 두드렸다. 뼈와 철제가 만나 청명한 소리를 퍼트렸다. 보기에도 단단한 문은 실제로도 그러한 모양인지 손가락 관절이 두어 번 두드렸을 뿐인데 빨갛게 피가 몰렸다. 김록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반대편으로 손으로 그 부위를 문질렀다.

“더럽게 딱딱하네.”

한동안 고요했던 문은 김록수의 말에 금세 들썩였다. 이 상태라면 열리는 문과 이마를 부딪칠지도 몰라 김록수가 한걸음 물러섰다. 아니나 다를까. 활짝 열리는 그곳에는 박진태가 서 있었다.

“너….”

거의 초면인데 어디서 너래. 그러나 박진태의 표정은 마치 정말로 놀란 표정이라 차마 그 말을 면전에 내뱉지 못했다.

“안 올 줄 알았어.”

그러려고 했지. 괜한 소리가 나는 것이 싫어 덧붙여 말하지 않았다.

“부원 가입한다고 했잖아.”

“...어, 어어. 그랬지.”

생긴 것과 다르게 좀 얼빵한가? 김록수는 시원치 않은 대답을 뱉은 박진태를 가볍게 지나쳐 동아리실로 발을 붙였다.

“....너밖에 없어?”

절대 방금 박진태가 자신을 향해 너라고 한 것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다. 김록수는 휑한 동아리에 홀로 있는 박진태를 보면 물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은 모양인지 갑갑한 방안에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득 메워져 있었다.

“어, 배푸름하고 김민아는 교양 들으러 갔고, 주호식은 오늘 휴강, 최한은 좀 있으면 올 거고. 최정수랑 이수혁은.”

“됐어. 둘 시간표는 알아.”

김록수는 익숙하게 소파에 자리 잡았다. 빼곡히 채워진 책장은 제목 없는 무지의 책들이 많았다. 아니, 오히려 다이어리 같기도 해 김록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닫는 박진태를 쳐다보았다.

“너는 왜 여기 있어?”

“난 오늘 아침 시험.”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한구석에 경영에 관한 책들이 한가득 놓여있었다. 가히 휘두르는 것만으로 흉기가 될 것 같은 두께에 김록수가 질린 듯 혀를 내두르다 더운 듯 옷을 펄럭였다.

“더워? 에어컨 틀어줘?”

박진태가 대수롭지 않게 가구 위를 더듬거리며 리모컨을 찾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리모컨이 없었다. 김록수는 소파 틈새 사이 끼어있는 하얀색 플라스틱을 발견했다. 크기나 모양으로 보아 저게 에어컨 컨트롤러인 듯 싶었다. 리모컨을 찾아 정신없는 박진태를 슬쩍 보다 김록수가 팔을 뻗어 틈에 끼인 컨트롤러를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전원 버튼과 온도 설정 버튼이 달려있는 에어컨 리모컨이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삐빅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18도라는 온도가 드러났다.

“거기 있었나 보네.”

박진태가 에어컨과 김록수를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지독한 침묵이 지나갔다. 후덥지근했던 텁텁한 바람이 냉기에 잡아먹혀 미적지근해지기 시작했다. 이마에 구르던 땀을 닦아낸 김록수가 아까 시선을 뺏겼던 책장에 다시 관심을 두었다.

“여기.”

박진태의 고개가 천천히 들려 김록수를 마주했을 때, 답지 않게 그의 손에는 안경이 들려있었다.

“여기 뭐.”

퉁명스러울 만큼 날카로운 물음이긴 했다. 그러나 천성 말투가 그런 듯 얼굴에 드러나는 불만과 악의는 보이지 않았다. 김록수는 그의 손에 들린 안경을 가리켰다.

“안경 쓰네.”

“어, 공부할 때만. 그렇게 시력이 좋은 게 아니라서.”

“시력이 안 좋으면 계속 끼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김록수가 찡그리듯 물어보자 박진태는 잠시 주춤했다. 이것 이야기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가늠하는 눈치였다.

“이야기하기 어려우면 말고.”

흥미가 동하는 주제는 아니었으니 김록수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그러나 박진태는 다른 모양이었다.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흔든 그는 이내 결심한 듯 제 귓불을 매만졌다.

“안경 쓰는 거에 너무 익숙해지면. 과녁 조준할 때 힘들어서 그래.”

과녁? 김록수의 시선이 다시 한번 박진태에게 닿았다.

“너 뭐 해?”

“아니, 뭐…. 사격하는 게 취미라서.”

끔찍하게도 잘 어울렸다. 총을 쥐고 목표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동자. 김록수는 총과 몹시 잘 어울리는 이를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렸다. 뭘까. 방금 그 선명한 모습. 어제 그 벤치에서와 같은 강렬한 이미지에 박진태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황스러운 듯 박진태의 미간이 좁아 졌다.

“왜 안 어울리냐?”

“아니.”

단호하도록 내뱉은 말에 박진태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록수는 시원해지는 공기에 둘러싸여 느긋하게 시야를 돌렸다. 단 하나 달린 창밖에서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흘러가듯 중얼거렸다.

“잘 어울려. 상상될 만큼.”

박진태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박진태와의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정신을 차린 듯 아까 하려 했던 질문을 마저 하려 했을 때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도저히 말을 걸 수 없었다. 시험을 망쳤나? 자신과의 대화에서 심란할 이유는 없었으니 짚이는 것은 아침 그가 봤다는 시험뿐이었다. 학점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져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김록수는 그가 심란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1시간이 흘렀을까. 아주 조그맣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학생회관을 지나가는 길인가 싶었지만 문 앞에서 우뚝 선 발걸음은 당연하다는 듯 동아리실의 문을 열었다. 밀폐된 차가운 공기가 바깥 후끈한 공기에 밀려났다. 김록수는 들어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아, 진태 형 계셨네요…. 록수 형도 있으셨네요.”

박진태처럼 놀랐다는 표정을 지은 최한은 마주 보고 앉은 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어서 오세요.”

“어.”

성격도 좋지. 단답에도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신발을 벗은 최한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열기를 식혔다. 새까만 무지 색 검은 티에서 은은하게 섬유유연제 향이 흘렀다.

“옷 갈아입고 왔냐?”

아까의 심정은 사라지고 삐딱하게 웃는 박진태가 최한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속도 좋지. 그러한 도발에도 최한은 선하게 웃었다.

“야, 신입생 괴롭히지 마.”

김록수가 보다못해 피곤한 듯 끼어들었다. 최한의 눈이 아주 잠깐 커졌다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왠지 그의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퍽 즐거워 보였다. 최한은 당연하다는 듯 김록수 쪽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야, 쟤 더위도 많이 타는데 왜 붙어 떨어져.”

“네가 내가 더위 타는 걸 어떻게 알아?”

무심코 흘러나온 말에 박진태의 입이 일자로 다물렸다. 설마.

“형이랑 최정수가 또 말하고 다녔나 보네. 누구 마음대로 체질 말하고 다니래.”

순간 아주 작게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박진태를 빤히 바라봤지만 잘못 들었다는 듯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은 은색의 무테안경을 추켜올리며 제 앞의 전공 책을 바라보았다.

“저, 멍청이.”

스산하게 흐르는 목소리에 옆자리를 보았지만 최한은 아까처럼 사람 좋게 웃으며 박진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잠을 통 못 잤더니 환청까지 듣네. 김록수는 둘의 이상기류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다. 다시 시간은 지나갔다. 하늘 높이 떠 있던 해가 점점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름은 여름인지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밖은 한낮처럼 밝았다. 슬슬 이수혁과 최정수가 실습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징. 양반은 못 되지. 자기들 생각하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문자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록수는 탁상 위 올려진 휴대폰을 집었다. 비밀번호 하나 설정하지 않은 화면에는 익숙한 프로필 사진 옆 각자의 특성이 담긴 문자가 보였다.

[수혁이 형: 어디냐.]

[최얼간이: ㅇㄷ]

텍스트에서 서로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록수는 각자에게 동아리실이라는 4글자를 보내주었다. 이수혁과 최정수의 답장은 금세 돌아왔다.

[수혁이 형: 거기로 간다. 기다려.]

[최얼간이; ㅇㅇ글로감]

“두 분이죠?”

최한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김록수를 쳐다보며 순순하게 웃었다. 김록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여기로 온다네.”

“세분은 정말 친하신가 봐요.”

“6년을 알고 지냈으니 징글징글하지.”

김록수는 가볍게 웃었다. 그런 김록수를 최한이 조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게 좀 머쓱해 김록수는 저도 모르게 최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한테는 비밀이야.”

다섯 손가락 사이에 닿는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살짝 눌린 머리카락이 최한의 눈을 살짝 덮었다. 아까 같은 똘똘한 눈동자가 머리카락에 가려져 흐트러졌다. 두 번째 만남에 이래도 될까 싶었으나 이상하게 최한을 보면 마음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컷 머리카락을 헝클인 뒤 김록수가 최한을 놓아주었다.

“허.”

박진태는 그 모습이 기가 막힌 듯 안경을 쓴 그 상태로 콧잔등에 자잘한 주름을 만들어냈다. 미안하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아서 김록수는 마저 답장을 보내고 소파에 늘어졌다.

“아주 네 안방이다. 안방.”

대화는 없어도 같이 있던 게 컸던 건지 박진태가 처음과 달리 편안하게 말을 붙였다. 김록수는 소파 팔걸이에 팔을 올려 그곳에 얼굴을 괴었다.

“나도 이제 여기 부원이거든. 그러니까 내 동아리기도 하지.”

“뻔뻔하기는.”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그의 얼굴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상한 놈이라는 생각을 하며 김록수는 노곤노곤한 몸에 힘을 쭉 뺐다.

“있잖아.”

잠이 들 듯 들지 않을 듯 간당간당한 순간 속에서 김록수가 몽롱하게 말을 걸었다. 반쯤 잠긴 눈꺼풀에 이들의 어떤 표정으로 있을지 보이지 않았으나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

“여기 뭐 하는 동아리야?”

“천체관측동아리.”

“진짜 안 어울린다.”

“동감이야.”

박진태는 김록수의 말에 바람 빠지게 웃었다. 그가 내뱉는 늦은 음성이 안정적으로 울렸다. 이수혁과 최정수에게 천체라니. 별자리에 죽어도 관심이라곤 없는 이들이. 김록수는 그들과 있으면서 별자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동아리나 그렇듯 멀쩡한 껍데기를 쓰고 사교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아리인 듯 싶었다. 김록수는 축 쳐지는 눈꺼풀을 이겨낼 수 없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잡으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김록수는 그곳에 잠에 빠져들었다.

 

***

 

“얼씨구 이놈 자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시끌벅적함이 늘어났다. 김록수는 제 단잠을 방해하는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위에서 어이없다는 듯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다고 짜증 내는 거 봐라. 이놈도 성격 보통이 아니라니까.”

말투가 딱 이수혁이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김록수가 속으로 짜증을 담았다. 일어나기만 해봐. 한 소리 해줘야지.

“솔직히 여기서 김록수 성격이 제일 더럽잖아요.”

최정수였다. 사람이 앞에 있는데 대놓고 욕을 하는 그들에게 김록수는 깊은 애정을 느꼈다. 일어나면 반드시 응징해 주리. 사랑의 주먹을 선사해줄 생각에 입꼬리가 실룩였다.

“웃어? 뭐 좋은 꿈이라도 꾸나 보네.”

당신들을 줘 패는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입술이 움직일 리는 전무했다. 김록수 위에 포근한 무언가가 덮어졌다. 낮아진 체온이 딱 적당하게 따듯해졌다. 본능적으로 김록수는 그 온기에 웅크리며 잠을 청했다. 이들은 김록수의 정신이 반쯤 깨어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저들끼리 잠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억은.”

“없는 것 같지.”

번갈아 가며 튀어나오는 소리에 서두는 없었다. 누가 기억을 잃었는지. 무엇이 없는지. 괜히 듣고 있는 자신이 다 답답한 지경이었다. 이들의 은밀한 속내는 계속 흘러나왔다.

“아까.”

박진태의 목소리였다. 김록수의 귀가 쫑긋 섰다.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아까라면 자신과 있었을 때인 듯 싶었다. 오냐 내 욕을 하면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주지. 옹졸한 제 속을 알 리 없는 박진태는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 어울린다고. 상상된다고.”

“걔가?”

이 대화는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김록수는 생각보다 맥이 빠졌다. 잘 어울릴 것 같아 잘 어울린다고 했는데 이렇게 비밀스럽게 말할 정도인가? 자신에 대한 취급이 박했다. 하긴 얼마나 봤다고. 김록수가 저린 왼팔에 몸을 돌려 누우려 뒤척였다. 일순 쥐죽은 듯 조용해지는 공기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나가서. 나가서 이야기하자.”

이수혁의 말이 마지막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닫혔다. 김록수는 그제야 비몽사몽 한 머리를 붙잡으며 소파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역시, 일어나 계셨네요.”

소름 돋을 뻔했다. 문 앞에 홀로 서 있는 최한은 김록수를 보면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짐승과도 같은 직감으로 자신이 자는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김록수가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초점도 잡히지 않은 눈꺼풀을 문질렀다.

“방금.”

“그런 것 같긴 했어요.”

다행이다. 방금 일어났다는 말을 믿어주는 저 선한 얼굴에 김록수는 속으로 안도했다.

“아까 정수 형이 담요 덮어드릴 때 일어났죠?”

김록수가 천천히 최한을 보았다. 점점 태양이 뉘엿하게 저물어 주황빛이 새어 들어왔다. 창을 통과한 빛은 김록수를 지나쳐 최한의 머리카락 위로 어른거렸다. 새까맣고 진한 속눈썹 아래 응시하는 새까만 눈이 우주처럼 암전이었다. 김록수는 할 말을 잃었다.

“저는.”

그 침묵을 깨고 웃음소리를 흘리는 최한은 어제의 기시감은 사라지고 낯설게 느껴졌다.

“오히려 지금이 괜찮은 것 같기도 해요.”

알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렸다. 김록수는 얼굴조차 구기지 못했다. 불편한 기색으로 물었을 뿐이다.

“뭐가 괜찮은데.”

“모든 게요. 저 사람들은 당신이 우릴 알아봐 주길 원하는 것 같지만. 저는….”

빛조차 들이치지 못할 것 같은 눈동자는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전혀 웃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웃는 인형 같았다.

“이대로도 괜찮아요.”

가슴께에 무언가 걸렸다. 오늘 먹은 것이 체했나 싶었지만, 기억을 뒤집어봐도 오늘 자신이 먹은 것은 카페에서 사 먹은 카페라테가 다였다. 김록수는 갑자기 이곳의 공기가 자신을 압박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까와 다른 소름 끼침. 김록수는 이 공간에서. 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이토록 불편한 느낌을 왜 가졌는지 깨달았다.

“나는 너희들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니야.”

“알아요.”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나는 김록수야.”

자신을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이수혁과 최정수도 알던 이를 자신에게 투영하는 걸까. 등허리를 따라 떨어지는 땀이 서늘하게 체온을 식혔다. 이곳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한순간에 말소 당했다. 어제까지 추억에 잠겨 갤러리를 뒤적이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몸 위를 덮은 겉옷을 팽개치고 김록수가 도망치듯 신발을 구겨 신었다. 최한은 김록수를 붙잡지 않았다. 미세하게 손을 떠는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을 뿐이다. 문 앞을 막은 최한은 순순히 비겨 섰다. 나가는 김록수를 잡지 않겠다는 의미가 여상히 드러났다. 문을 열었다. 한기가 도는 동아리와 달리 뜨거운 열기에 점령당한 바깥은 이수혁과 최정수 그리고 박진태가 서로 진중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일어났네?”

최정수와 눈이 마주쳤다. 갈색의 눈동자.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던 저 눈동자가 사실 자신이 아니 무언가를 보고 있는 거라면. 김록수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알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수혁과 최정수로 만들어졌던 자신의 6년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김록수는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 마냥 그곳을 벗어났다.

“야, 김록수 왜 그래! 어디가!”

이수혁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럴수록 김록수의 발걸음이 빨라졌을 뿐이다. 석양의 빛을 토해내어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인 태양이 점점 땅 아래로 추락했다. 김록수의 심장처럼.

 

***

 

그들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배신? 그래 자신은 정확하게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었다. 알고 지낸 것이 6년이다. 중간에 그 사람을 포기하고 김록수 그 자체만을 바라봐 줄 때도 되지 않았나? 그 6년을 여전히 잊지 못해 미련하게 붙잡아 제 위에 씌워놓다니. 그런 그들 사이에 좋다구나 웃은 자신이 비참했고 미련했다. 애초에 그들 사이에 자신은 끼어들지 못했다는 박탈감이 차올랐다. 어두운 방 김록수는 무력감에 휩싸이며 전화기의 전원을 껐다. 마지막으로 본 메시지가 뭐더라.

[수혁이 형: 록수야. 아니야.]

뭐가 아니라는 걸까. 이미 6년이라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어제까지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랐으면서 당당하게 아니라고 했다. 분명 여름임에도 창틈 새로 음산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김록수는 그 창문을 닫을 기력도 들지 않았다. 그저 침대 위에 웅크려 번데기의 흉내를 냈다. 아버지가 김록수를 보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김록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김록수는 사흘을 침대에서 보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이수혁을 불러들였으나 원인 제공자인 만큼 역효과나 다름없었다. 한 번도 잠근 적 없는 방문이 굳게 걸어 닫혔다. 어머니는 당황한 눈치였다.

“어머, 불러왔는데 미안해라….”

“아닙니다.”

한때 믿음직하던 저 목소리가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수혁과 최정수는 번갈아 가면 김록수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방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오일째가 되는 날. 김록수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살기 위해 몸이 만들어낸 블랙 아웃이었다. 김록수는 이상한 꿈을 꿨다. 이상하다고 해도 될까? 언제나 꾸었던, 일어나면 모두 잊어버리는 그 꿈을 꾸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진짜 같아.’

장막에 한 겹 쌓여 보았던 그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서 있는 그곳이 지옥이라는 듯 펼쳐진 참혹한 환경에서 김록수는 죽음의 향기를 맡았다. 꿈 속에서 자신은 살기 위해 죽어라 도망쳤다. 알바 하던 건물이 무너져 죽을 위기에 있다 3일 만에 누군가에게 구조되어 살아남았다. 그의 이름은.

이수혁. 자신이 알고 있는 이수혁이었다. 건조하면서도 입가에 달린 미소가 시원했다. 꿈을 이제껏 잊은 김록수를 탓하는 듯 여러 가지를 한번에 보여주었다. 눈 깜박할 때마다 바뀌는 장소는 다양했다. 다 무너져가는 건물이기도 했고 도로 위이기도 했으며 마지막은. 벤치에서 보았던 회사였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현실감이 강했고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섞여 하나의 이야기라고 보기 어려웠다. 박진태, 배푸름, 김민아, 최정수. 이 넷은 자신의 꿈에서 끊임없이 등장했지만 최한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기에. 그런 그가 자신을 어떻게 알아 이수혁의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김록수의 의문은 길지 않았다. 괴물에게 처참하게 당할 수밖에 없던 그때, 자신을 살리고자 부러진 칼도 휘두르던 이수혁과 최정수의 마지막이 펼쳐졌다. 성한 곳 하나 없는 몸을 붙잡아 김록수 하나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발악하던 그들의 생명이 성냥처럼 꺼져갔다. 분명히 꿈일 텐데. 꿈이어야 하는데. 제 코앞에서 죽어가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김록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 두 눈동자로 기억하는 것 그뿐이었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고 싶다고 속은 아우성을 치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저기 자신의 친우가, 우리의 팀장이 죽어가고 있는데말이다. 퓨즈가 끊긴 듯 김록수 속으로 엄청난 기억들이 범람하여 그를 잡아먹었다. 그들의 장례식을 치르며 독종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어느 날. 팀원에서 팀장이 되던 어느 날. 그리고….

‘케일 헤니투스가 된 날.’

김록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25년을 살아온 자신의 방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언제나 일회성처럼 사라지던 꿈은 더 이상 그러지 않겠다는 듯 온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케일 헤니투스. 이제야 최한과의 인연까지 이해가 되었다. 김록수는 울지 않기 위해 두손을 붙잡았다. 만일 자신이 지금 예상하는 게 맞다면. 그렇다면.

김록수는 꺼진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오랫동안 방치된 핸드폰에는 부재중과 문자, 여러 연락들이 수십 통이 넘게 와있었다. 김록수는 가장 상단에 부재중에 뜬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의 신호음이 지났을까.

[여보세요.]

나지막한 목소리는 지쳐 보였다. 김록수는 먹먹한 목을 손가락 끝으로 꾹 누르며 울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국가대표나 할 것이지 안 어울리는 경영학과에 와서는.”

박진태가 숨을 참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김록수는 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내일, 동아리 방에서 보자.”

[너…. 김록수 너….]

“할 말이 많으니까.”

 

***

 

김록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7명의 시선을 가뿐히 받아냈다. 자신이 도착하기 전부터 와있었던 이들의 얼굴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엉망진창인 게 티가 났다.

“언제부터.”

결국, 입을 여는 것은 김록수였다.

“언제부터 기억이 있었어요, 다들?”

할 말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저 얼굴들을 마주하니 그런 말들이 사라졌다.

“빌어처먹을. 또 나만 나쁜 놈 만들어놓고.”

좁아지는 미간에 최정수가 가볍게 웃었다.

“그럼 어떻게. 기억해달라 조른다고 해서 전생의 기억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6년을 그러고 살았냐?”

허탈감에 김록수의 입에서 실소가 흘렀다. 이수혁은 그런 김록수를 마주하며 제 손을 빡빡하게 문질렀다.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

“네가 케일 헤니투스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

“뭐?”

이건 몰랐다. 김록수의 낯이 어두워졌다.

“케일 헤니투스가 되고 네가 다른 차원의 지구로 넘어온 그때의 기억들도 우리는 있다고.”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무어라 말해야 할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라고는. 이곳에 있는 8명 모두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는 현실이었다. 김록수가 마치 세수를 하듯 두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이러지 않고서야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박진태는 짜증이 섞인 얼굴로 김록수를 마주했다.

“원래라면 죽었어야 했던 내가, 다른 차원에서 네 도움을 받고 살아남은 것까지 기억해.”

배푸름이 며칠 전 김록수가 관심을 가졌던 책장에 손을 얹었다.

“ 여기 있는 이 책들은 저희가 록수 형과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서 적어놓은 곳이에요.”

“혹시나 잊을 까봐. 우리가 또 아저씨의 무모함을 잊고 지금의 당신만을 기억하고 싶을 까봐.”

김민아가 분한 듯 김록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이 동아리.”

주호식의 말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김록수는 다시 한번 더 이 2평 남짓한 공간을 둘러보았다. 빽빽한 공간이 오로지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동아리 이름이 왜 ‘길잡이’인 줄 알아?”

이수혁이 김록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우리의 길이었으니까. 케일 헤니투스였던 네가 우리를 이끌었으니까. 그래서 이 동아리 이름을 길잡이라고 지었어.”

김록수는 잔잔히 말문을 트는 이수혁의 이야기를 고요하게 들었다.

“다른 차원이라도 결국 나였지. 사람을 구하는 것에 지쳐 포기할 뻔 하려던 나를 구해낸 네가 나에게는 별자리 같았어. 나침반이 없어도 네가 있으면 이 어두운 세상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었지.”

“그치만 넌 주목받는 걸 싫어했잖아. 모든 이들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 존재감은 옅으려고 했지. 비록 그게 더 네 행적의 위상을 높이게 되는 결과였지만.”

중간중간 킬킬거리며 웃는 이수혁을 따라 주변 이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김록수는 이 모든 것을 얼떨떨하게 들었다.

“우리들이 모인 건 다 우연이었어. 어쩌면 죽음의 신이 우리를 이렇게 모은 걸지도 모르지. 확실한 건 기억이 없던 너와 달리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전생의 기억을 다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널 만나고 우리가 만나는 날 결심했지.”

이수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날카롭게 가로로 찢긴 눈매가 일순 풀렸다.

“못다한 꿈을 이루기로.”

“가족이 되자고 했잖아.”

최정수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가족이라고 하셨잖아요.”

계속 침묵을 지키던 최한조차 가족이라는 단어에 슬그머니 말을 얹었다. 김록수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거 하나 하자고 기억도 없는 나를 기다렸다고?”

전부 바보 멍청이였다. 언제 돌아올 줄 알고 기다린다는 건지. 만일 돌아오지 않았다면. 이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가졌어야 했을지 몰랐다.

“만일.”

박진태의 목소리에 김록수가 시선을 사선으로 돌렸다.

“네가 기억을 못 찾는다고 해도 괜찮았어.”

“왜?”

“지금의 너도 괜찮았으니까.”

마음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실타래가 녹아 사라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맞은 것 마냥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이들을 둘러보던 김록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위로 들었다.

“멍청이들만 모여가지고.”

“지는.”

박진태의 투덜거림이 시끄럽던 속을 잔잔히 재웠다. 이수혁이 그런 박진태의 뒤통수를 빡소리 날만큼 후려쳤다.

“입.”

“악! 왜 나만 때려!”

소리가 큰 만큼 꽤나 아팠던 모양인지 눈물을 찔끔 매단 눈동자가 이수혁을 노려보았다. 김록수는 자신을 기다린 이들을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정말이지.

“바보들이 따로 없잖아.”

겨우 진정된 목소리로 김록수는 한숨을 뱉었다, 여러 가지 응어리가 풀린 숨소리가 바닥에 잔잔하게 깔릴 때쯤 갑자기 드는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있잖아요.”

“왜.”

박진태와 투닥이던 이수혁이 김록수를 보며 아직 할 말이 남았냐는 듯 표정을 굴렸다.

“왜 하필 별자리였어요? 다른 것도 있었을 텐데.”

길잡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생각하니 절로 의문이 들었다. 이수혁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 이내 혀를 한 번 차고 말을 꺼냈다.

“네 생일날 우연히 하늘을 봤는데 삼각형 모양으로 반짝이는 별이 보이더라고.”

“.....”

“그 삼각형 별 가운데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별도.”

이수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언제나 사건 사고의 중심에 있으면서 고요한 너랑 닮아 보였어. 찾아보니까 외뿔소자리라고 하더라고. 알려진 것도 무엇도 없는 겨울의 대삼각형 중심에 있는 별자리.”

“그래서 별자리였어. 말했잖아. 이 동아리는 오직 너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이수혁이 말한 사실은 생각보다 더 감성적이라 김록수는 저도 모르게 찌푸려지는 얼굴을 막지 못했다.

“형 안 어울려.”

“너도 맞고 싶냐?”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분위기 속에서 이끌린 것처럼 창밖을 쳐다보았다. 무더위에도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분명 이 밖을 나가면 매미 소리도 엄청나리라. 김록수는 새삼 평화로움에 몸을 기대었다. 세 번째 생으로 얻은 평화는 생각보다 달콤해 앞에서 투닥이는 이수혁과 박진태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고마워.”

속삭이듯 내뱉어지는 목소리는 박진태의 짜증에 묻혔다. 뭐든 좋았다. 김록수는 이 일상을 온전히 누리기로 했다.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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